오늘은 대표적인 식물 병해 9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식물은 인간과 다르게 말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식물은 잎의 색, 줄기의 탄력, 뿌리의 냄새와 감촉, 그리고 한순간의 시듦이나 마름을 통해 자신이 처한 위기를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뿌리썩음병처럼 식물의 생명을 위협하는 병들은 그저 한 포기의 고사(枯死)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생태계의 균형, 인간의 농업과 정원, 그리고 자연과 문화의 경계에서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거대한 파동입니다. 식물병의 세계는 단순한 암기나 패턴의 나열로는 결코 다 담아낼 수 없는, 혼돈과 변주, 그리고 예외의 연속입니다. 뿌리썩음병이든, 탄저병이든, 흰가루병이든, 그 이름 뒤에는 늘 예측 불가한 자연의 역동성과 식물과 병원체, 환경과 인간의 복잡한 상호작용이 숨어 있습니다.
목차
1. 뿌리썩음병 – 땅속에서 시작되는 위기
뿌리썩음병은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조용히, 그러나 집요하게 진행된다는 것이 특징인 대표적인 식물 병해죠. 주로 피티움(Pythium), 피토프토라(Phytophthora), 푸사리움(Fusarium), 리조크토니아(Rhizoctonia) 등 곰팡이 또는 곰팡이 유사 병원균이 원인입니다. 토양이 과습하거나 배수가 불량한 환경, 연작(같은 작물을 계속 심는 것), 밀식, 온도 변화가 심한 하우스 등에서 병원균이 활발히 증식합니다. 뿌리썩음병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작되며 식물의 뿌리는 어둠 속에서 조용히 병원균과의 싸움을 벌입니다. 곰팡이들이 토양 속에서 기다리다, 과습과 배수 불량, 연작의 틈을 타 침입합니다.
식물의 뿌리가 갈색 또는 검은색으로 변하고, 물러지거나 썩은 냄새가 나며, 잎은 노랗게 마르고 시들다 끝내 떨어집니다. 어떤 식물에서는 어린 싹이 쓰러지고, 또 어떤 식물에서는 잎이 노랗게 변하다가, 뿌리를 들춰보면 이미 검게 물러 있습니다. 이 병은 채소, 화훼, 과수, 곡류, 약용식물 등 거의 모든 식물에서 발생할 수 있으며, 한 번 감염되면 치료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뿌리썩음병은 한 포기의 고사로 끝나지 않습니다. 병든 흙, 물, 도구, 심지어 바람 한 줄기까지도 병원균의 전파 통로가 됩니다. 치료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고, 예방만이 유일한 방패입니다. 즉 건전한 토양 관리와 배수, 적정한 관수, 연작 회피, 감염 식물의 조기 제거 등을 통해 식물을 꾸준히 관리해줘야만 합니다. 그리고 매년, 매 계절, 뿌리썩음병은 늘 새로운 방식으로, 다른 식물과 환경에서 다시 시작될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합니다.
2. 탄저병 – 불에 그을린 듯한 흔적이 특징
탄저병은 식물의 잎, 줄기, 과실, 심지어 꽃까지 침범하는 대표적인 식물 병해 곰팡이병입니다. 주로 콜레토트리쿰(Colletotrichum) 속 곰팡이가 원인으로, 고추, 딸기, 사과, 배, 감귤, 벼, 콩, 수박, 오이, 참외, 고구마 등 다양한 작물에서 발생합니다.
탄저병의 이름은 불에 탄 듯한 검은 반점에서 유래합니다. 잎에서는 원형 또는 불규칙한 암갈색~흑색 병반이 생기고, 병이 진전되면 중심부가 움푹 들어가거나 구멍이 뚫립니다. 탄저병은 식물의 잎, 줄기, 과실, 심지어 꽃까지도 예외 없이 침범합니다. 고추, 딸기, 사과, 배, 감귤, 벼, 콩, 오이, 수박, 참외, 고구마… 탄저병은 작물의 종류도, 증상의 양상도, 확산의 속도도 늘 다릅니다. 과실에서는 움푹 패인 검은 반점, 줄기나 가지에서는 껍질이 벗겨지거나 마름 증상이 나타납니다. 고온다습한 여름, 장마철에 급격히 번지며, 병든 식물의 잔재, 토양, 빗물, 바람, 농기구 등을 통해 전염이 심해질 수 있습니다.
탄저병은 한 번 발생하면 수확량이 급감하고, 상품성이 크게 떨어지며, 방제가 늦으면 전체가 고사할 수 있습니다. 예방을 위해서는 병든 부위의 조기 제거, 토양 소독, 저항성 품종 선택, 환기와 배수 관리, 예방적 약제 살포가 필요합니다. 탄저병은 한 번 발생하면 수확량과 상품성이 크게 떨어질 수 있으므로, 주기적인 관찰과 신속한 조치가 중요합니다.
3. 흰가루병 – 밀가루가 뿌려진 듯한 식물 병해

흰가루병은 에리시페(Erysiphe), 오이디움(Oidium) 등 곰팡이에 의해 발생하며, 장미, 오이, 호박, 수박, 참외, 가지, 토마토, 고추, 포도, 사과, 배, 복숭아, 딸기, 국화, 해바라기 등 다양한 작물에서 나타납니다. 처음에는 잎 뒷면에 작은 흰 반점이 생기고, 점차 잎 전체, 줄기, 꽃, 과실까지 흰가루가 번집니다. 심하면 잎이 말리고, 광합성 저하, 생육 부진, 조기 낙엽, 과실의 품질 저하, 식물 전체의 고사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흰가루병은 고온건조한 낮과 이슬이 맺히는 밤에 잘 발생하며, 병원균은 식물 잔재, 토양, 바람, 빗물, 곤충 등을 통해 전파됩니다. 방제를 위해서는 병든 부위 조기 제거, 통풍 개선, 밀식 회피, 저항성 품종 선택, 예방적 약제 살포가 중요합니다. 약제 내성이 빨리 생길 수 있으므로, 다양한 약제를 교호 사용해야 하며 환경 관리에도 신경 써야 합니다.
4. 역병 – 한순간에 무너지는 생명의 성채
역병은 피토프토라(Phytophthora), 페로노스포라(Peronospora), 플라스모파라(Plasmopara) 등 난균류에 의해 발생합니다. 감자, 토마토, 고추, 오이, 수박, 참외, 호박, 포도, 배추, 무, 양파, 시금치, 상추, 브로콜리 등 다양한 작물에서 나타납니다.
잎, 줄기, 과실에 물에 젖은 듯한 반점이 생기고, 고온다습한 날씨에 급격히 번집니다. 병이 진전되면 잎과 줄기가 검게 썩어가며, 과실은 물러지고, 결국 식물 전체가 고사할 수 있습니다.
역병은 토양, 식물 잔재, 빗물, 바람, 농기구, 씨앗 등 다양한 경로로 전염됩니다. 예방을 위해서는 병든 식물의 조기 제거, 저항성 품종 선택, 토양 소독, 배수 개선, 예방적 약제 살포가 필수입니다. 역병은 한 번 번지면 방제가 매우 어렵고, 피해가 크기 때문에 항상 주의가 필요합니다.
5. 세균성 시들음병 – 보이지 않는 적
세균성 시들음병은 곰팡이가 아닌 세균(Ralstonia solanacearum, Erwinia, Pseudomonas 등)에 의해 발생합니다. 가지과, 박과, 국화과, 콩과, 배추과, 과수 등 다양한 작물에서 나타납니다.
세균은 뿌리나 줄기의 상처, 뿌리 끝, 기공, 해충의 흡즙 자리를 통해 침입해 도관(물관)을 막습니다. 잎과 줄기가 갑자기 시들고, 낮에는 심하게 시들다가 밤에는 일시적으로 회복되는 증상이 반복됩니다. 줄기를 자르면 도관에서 하얀 세균 점액이 흘러나오기도 합니다.
토양, 물, 감염 식물, 농기구, 해충, 씨앗 등 다양한 경로로 전염되며, 고온다습한 환경, 연작, 배수 불량, 밀식, 상처가 많은 조건에서 발병이 심합니다. 방제는 건전 종자 사용, 저항성 품종 선택, 배수 개선, 상처 예방, 병든 식물의 조기 제거, 농기구 소독, 윤작 등이 필요합니다. 세균성 시들음병은 한 번 번지면 방제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예방이 가장 중요합니다.
6. 과수화상병 – 과수농가의 치명적 세균병
과수화상병은 사과, 배, 모과 등 장미과 과수에서 발생하는 치명적인 세균병입니다. 에르위니아(Erwinia amylovora)라는 세균이 원인입니다.
이 병에 걸리면 신초, 잎, 꽃, 과실, 줄기, 뿌리까지 검게 타 들어가며 시들고, 결국 고사합니다. 주로 꽃이 피는 봄에 발생하며, 꿀벌 등 곤충, 바람, 빗물, 감염된 농기구, 사람의 손길을 통해 전염됩니다. 감염된 부위에서는 끈적한 세균 점액이 흘러나오기도 합니다.
과수화상병은 방제가 매우 어렵고, 한 번 발생하면 감염 나무 전체를 뿌리째 뽑아 소각해야 합니다. 이동 제한, 방역, 약제 살포, 저항성 품종 개발 등 국가적 관리가 필요합니다. 최근 국내에서도 대규모로 발생해 농가와 지역사회에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7. 녹병 – 잎에 나타나는 다양한 색의 곰팡이
녹병은 식물의 잎, 줄기, 과실 등에 황적색, 주황색, 갈색, 흑색 등 다양한 색의 분생포자가 먼지처럼 피어나는 곰팡이병입니다. 밀, 보리, 옥수수, 벼, 콩, 장미, 배, 소나무 등 다양한 작물과 수목에서 발생합니다.
주로 푸시니아(Puccinia), 유레도(Uredo), 크로시스포라(Cronartium) 등 복잡한 생활사를 가진 곰팡이가 원인입니다. 잎 뒷면에 작은 황적색~갈색의 분생포자가 나타나고, 점차 잎 전체, 줄기, 과실로 번집니다. 심하면 잎이 말리고, 광합성 저하, 생육 부진, 조기 낙엽, 수량 감소, 상품성 저하, 식물 전체의 고사로 이어집니다.
녹병은 바람, 빗물, 곤충, 식물 잔재, 토양 등을 통해 전파되며, 기주 교대(중간기주와 주기주를 오가는 생활사)로 인해 방제가 어렵습니다. 예방을 위해서는 저항성 품종 선택, 병든 부위 조기 제거, 식물 잔재 소각, 환기와 배수, 예방적 약제 살포 등이 필요합니다.
8. 흑반병 – 검은 반점으로 대표되는 병해
흑반병은 장미, 배, 사과, 감귤, 고추, 오이, 참외, 수박, 포도, 감자 등 다양한 식물에서 발생하는 곰팡이병입니다. 주로 디플로카르폰(Diplocarpon), 알터나리아(Alternaria), 콜레토트리쿰(Colletotrichum) 등 곰팡이가 원인입니다.
잎, 줄기, 과실 표면에 검은색 또는 암갈색의 둥근 반점이 생기고, 점차 확대되어 잎 전체가 마르거나 떨어집니다. 흑반병은 고온다습한 여름, 장마철에 급격히 번지며, 병든 식물의 잔재, 토양, 빗물, 바람, 농기구 등을 통해 전염됩니다.
심하면 식물의 광합성 저하, 생육 부진, 조기 낙엽, 상품성 저하, 수확량 감소, 식물 전체의 고사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예방을 위해서는 병든 부위 조기 제거, 토양 소독, 저항성 품종 선택, 환기와 배수, 등록 약제의 예방적 살포가 필요합니다. 흑반병은 매년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며, 방제의 어려움이 큰 병 중 하나입니다.
9. 뿌리혹병 – 뿌리의 혹이 만드는 생육 저하
뿌리혹병은 뿌리에 혹이 생기고, 식물 전체가 시들고 생육이 부진해지는 대표적인 토양병입니다. 주로 멜로이드진(Meloidogyne) 속의 뿌리혹선충이 원인으로, 토마토, 오이, 가지, 고추, 수박, 참외, 콩, 감자, 고구마, 국화, 장미, 백합 등 다양한 작물에서 발생합니다.
선충은 뿌리 조직에 침입해 혹을 만들고, 영양분 흡수를 방해합니다. 잎은 노랗게 변하고 시들며, 뿌리는 혹이 생겨 식물 전체의 생장이 위축됩니다. 뿌리혹병은 토양, 감염 식물, 농기구, 물 등을 통해 전파되며, 연작, 배수 불량, 밀식, 상처가 많은 조건에서 발병이 심해집니다.
방제는 건전 종자 사용, 저항성 품종 선택, 토양 소독, 윤작, 병든 식물 조기 제거, 농기구 소독 등이 필요합니다. 뿌리혹병은 한 번 발생하면 방제가 쉽지 않으므로, 예방과 토양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마치며
식물 병해는 늘 예외와 변주, 그리고 예측 불가의 연속입니다. 같은 병원균이 다른 식물에서 전혀 다른 증상을 보이고, 같은 식물에서도 해마다, 장소마다, 환경마다 또 다른 얼굴을 드러냅니다. 병의 이름, 증상, 방제법조차도 시대와 지역, 연구자와 농민, 자연과 인간의 선택에 따라 끊임없이 바뀝니다. 식물 병해를 방제하는 가장 큰 어려움은 바로 끊임없는 변화와 예측 불가성에 있습니다.
해마다 피해 양상이 달라 예측이 어렵고, 한 번 발생하면 방제가 쉽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예방과 조기 발견, 환경 관리, 저항성 품종 개발, 위생적 관리가 중요합니다. 식물병은 단순한 재해가 아니라, 생명과 환경, 인간과 자연, 그리고 돌봄과 무관심, 변화와 적응, 그리고 예측 불가의 어려움이 교차하는 거대한 생태 드라마입니다. 식물 병해는 농업 생산성, 식량안보, 생태계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평소에 관심을 갖고 관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같은 병이라도 환경, 작물, 해마다 다르게 나타날 수 있으므로, 현장 관찰과 신속한 대응이 중요합니다.